우리는 흔히 "야! 배고픈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때냐?" 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된다. 이 말은 배고픈데 찬밥이 맛이 없다고 안 먹을 수 없다는 말이다. 정말로 찬밥은 맛이 금방한밥이나 뜨거운밥보다 맛이 없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냥 쉽게 지나쳐 버리는 사실이지만 한번 화학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자.
전분은 화학적으로 두가지 유형이 있다. 첫번째는 물에 녹지 않고 좀처럼 소화되지 않는 베타 전분이고 두번째는 소화가 잘 되는 알파 전분이다. 이 두 물질이 다른지 살펴보기로 하자. 전분입자를 미세하게 관찰하면 글루코오스가 한 줄기 사슬처럼 연결된 아밀로오스와 그것이 가지를 치고 갈라진 아밀로팩틴이 혼재된 상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전분은 매우 잘 알려진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구조에 대하여서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보통 쌀에 들어있는 전분은 아밀로오스가 20%, 아밀로팩틴이 80%이고, 찹쌀의 경우는 거의 아밀로팩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분은 글루코오스로 이루어진 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이 글루코오스와 같은 단당이 10개 이상 어어진 탄수화물을 폴리사카라이드라고 총칭한다. 그리고 폴리사카라이드는 한 종류의 당으로 이루어진 호모폴리사카라이드와 두 종류 이상의 당으로 이루어진 헤테로폴리사카라이드로 나뉜다. 따라서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팩틴으로 이루어진 전분은 헤테로폴리사카라이드의 일종이다.
전분은 글루코오스가 사슬모양으로 연결된 것이지만, 그 사슬의 일부는 수소 결합으로 매우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부분과 불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부분이 같이 섞여 있다. 규칙적인 부분은 결정상태로 되어있고, 이 부분을 '미셀'이라고 한다. 미셀부분은 결정이 매우 가지런하기 때문에 물분자가 파고 들어갈 수가 없다. 이러한 미셀 구조를 가진 전분이 베타 전분이다. 베타 전분은 물에 녹지 않고 침전한다. 이것에 비해 미셀 구조를 갖지 않는 전분을 알파 전분이라고 한다.
베타 전분 상태가 되면 미셀 구조 때문에 소화 효소의 작용을 받기 어려워서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베타 전분에 물을 넣고 가열하면 미셀 구조에 틈이 생기고 물분자가 침입하여 미셀 구조가 차츰 무너진다. 이것을 전분의 소화라고 한다. 나아가 더욱 가열을 하면 미셀은 완전히 풀어지고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팩틴이 단분자가 되어 많은 물분자들에 둘러싸인 상태가 된다. 이 상태가 알파 전분이다. 따라서 알파 전분은 글루코오스 사이의 수소 결합이 끊어져 분자가 작아지거나, 분자 사이가 벌어져 있는 상태로 되어 있다. 이 상태가 되면 미셀 구조가 느슨해지고 풀어져 있기 때문에 소화 효소의 작용을 받기 쉬워진다. 즉, 전분을 함유한 식품을 볶고, 굽는 등의 가열조리법은 바로 베타 전분을 알파 전분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알파로 변환된 전분도 수분이 있는 채로 식히면 다시 원래의 베타 전분으로 돌아간다.
갓 지은 밥이나 금방 나온 떡이 맛이 있는 것은 알파 전분 상태이기 때문이다. 찬밥이 맛이 없고, 굳은 떡을 먹을 수 없는 것은 알파 전분이 노화해서 다시 베타 전분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파 전분이 뜨거울 때에 급속하게 수분을 제거하면 어떻게 될까? 수분을 10-18%이하로 하면 노화 속도는 현저하게 더뎌진다. 수분이 존재하더라도 그 대부분이 결정수로 존재하고 전분 분자의 재배열에 대해 용매로서 작용하지는 않는다. 수분을 제거한 알파 전분을 함유한 식품의 좋은 예가 비스킷이나 쿠키, 전병이나 유과이다. 급속하게 건조시켜 알파 전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속에 얼마나 많은 화학적인 원리와 결합들이 존재하는지 알수있었을 것이다. 밥에 무슨 성분이 있는 것을 알며 식사한다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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