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물질로서의 DNA
20세기에 들어 생물학의 놀라운 발전 중 하나는 유전물질의 규명 및 유전자의 발현양상을 분자 수준에서 밝혔다는 점이다. 1869년에는 세포의 핵으로부터 질소와 인을 함유하고 있는 '뉴클레인'이라고 하는 물질이 추출된 바 있으나(지금은 DNA라는 사실이 밝혀졌음), 사람들은 염색체의 단백질 안에 유전정보가 들어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핵산이 단 4개의 염기·당·인산으로 구성된 반복 단순구조로서 단지 염색체의 단백질을 고정시키는 물질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핵산이 단지 4종류의 단위블럭으로 구성된 단순구조인 반면, 단백질은 20종류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유전형질의 구조적·기능적 다양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DNA가 유전정보의 매개체로 작용한다고 하는 증거는 지극히 단순한 미생물학적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이러한 기초적 연구 중의 하나는 1944년 미국의 유전학자인 에이버리 등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 연구결과는 세균성 폐렴을 일으키는 폐렴균의 독성을 연구한 영국의 세균학자 그리피스의 실험결과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리피스는 폐렴균의 발병성은 세균을 둘러싸고 있는 다당체 협막(莢膜 capsule)에 의한 것이며, 이 다당체 막을 갖고 있는 폐렴균은 생쥐에 폐렴을 일으키고 배양시 배지 위에서 소면(素面 smooth)의 윤택이 있는 커다란 콜로니를 형성하지만, 계대배양(繼代培養)을 계속하면 어떤 폐렴균은 다당체 세포막을 소실하여 콜로니의 크기가 작아지며 조면(粗面 rough)의 콜로니를 형성할 뿐 아니라 감염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소면과 조면의 콜로니를 형성하는 세균은 영문의 앞글자를 따서 S형과 R형 세균으로 각각 명명했다.
그리피스는 살아 있는 R형 또는 열을 가해 죽인 S형 폐렴균을 각각 생쥐에 주입하였을 경우 둘 모두 감염성이 없었으나, 살아 있는 R형과 열을 가해 죽인 S형 폐렴균을 섞어서 쥐에 주입하였을 경우 폐렴에 감염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폐렴에 감염되어 죽은 생쥐의 체내에는 S형이 존재함을 확인함으로써 죽인 S형의 어떤 물질, 즉 '형질전환 물질'이 R형이 S형으로 형질전환하는 데 기여했음을 밝히게 되었다.
에이버리 등은 이러한 그리피스의 실험을 기초로 한 자신들의 실험결과에 근거하여 다당체 협막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인 DNA는 죽은 감염성 S형으로부터 살아 있는 비감염성 R형의 DNA에 전이되어 감염성 S형으로 형질전환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형질은 계속해서 자손에게 유전됨을 확인했다.
1950년에 허시와 체이스는 대장균에 감염하는 박테리오파지(단순히 파지라고도 함)를 이용한 실험을 통하여 DNA가 유전물질임을 결정적으로 밝히게 되었다. 파지는 육각의 머리, 원통형 꼬리, 6개의 꼬리섬유를 가진 말판(末板)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파지의 머리 부분에는 DNA가 들어 있으며 단백질 막이 DNA를 둘러싸고 있다.
파지가 숙주인 대장균을 감염시킬 때 자신의 유전물질을 숙주의 체내에 주입한 후 숙주의 대사기구를 이용하여 새로운 파지를 합성하기 시작한다. 충분한 수의 파지를 합성하고 숙주의 물질대사 기능이 마비되면 숙주세포의 세포막을 파괴하고 밖으로 나온다. 숙주를 죽이고 밖으로 나온 새로 합성된 파지들은 다시 다른 대장균을 공격하여 생활사를 반복한다.
이러한 사실을 기초로 허시와 체이스는 2가지 종류의 파지를 준비했다. 한 종류는 방사선 동위원소로 파지의 단백질을 표지(標識)하고 다른 종류는 파지의 DNA를 표지했다. 이들 파지를 각각 대장균에 감염시킨 후 방사선 동위원소의 위치를 확인한 결과, 단백질에 표지한 방사선 동위원소는 감염 후 숙주의 체외에 남아 있는 반면, DNA에 표지한 방사선 동위원소는 숙주의 체내에 존재하고 새로 만들어진 파지의 DNA에도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로 허시와 체이스는 파지의 유전물질은 단백질이 아닌 DNA임을 증명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DNA는 거의 모든 생물의 유전물질이지만, 레트로바이러스와 같은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들은 유전물질로 DNA 대신 RNA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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