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England Premier League)
1) 리그 역사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잉글랜드 축구는 유러피언 컵을 휩쓸었지만,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암울한 시기에 들어섰다. 경기장이 오래되어 망가지고, 잉글랜드의 클럽들은 1985년에 벌어진 헤이젤 참사 로 유러피언 컵 참가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1990년에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면서부터 역사는 시작되었다. UEFA는 1990년 잉글랜드 구단의 유럽 대회 5년 출장 금지 조치를 해제하였고, 당시에 치러진 UEFA컵 위너스컵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우승하였다.
시즌이 종료된 후에는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위해 새로운 리그 설립에 관한 제안이 제기되었고, 1부 리그 클럽들은 창립 회원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에 따라 프리미어리그를 조직하기 위한 기본 원칙이 수립되었고, 1992년 5월 27일에 프리미어리그가 설립되었다. 프리미어 리그는 2000년 5위였던 UEFA 랭킹을 2001년 프랑스 리그와 독일 분데스리가를 제치면서 3위로 끌어올렸고, 이후 2005년 세리에 A를 제치고 리그 랭킹 2위를 차지했으며, 2008년에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마저 제치고 유럽 최고의 리그로 우뚝 서게 된다.
하지만 2013년,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에게 다시 UEFA 리그 랭킹 1위 자리를 내주었고, 2015년부터는 독일 분데스리가에게 마저 따라
잡히며, 리그 랭킹 3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2016-17 시즌 맨유의 UEFA 유로파리그 우승, 2017-18 UEFA 챔피언스리그의 좋은 성적으로 리그 랭킹 2위를 탈환했다. 그리고 2021년에는 8년 동안 최정상 자리를 지키던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를 다시 한번 끌어내리고 리그 랭킹 1위를 탈환하여 마침내 유럽 리그 최정상 자리에 복귀했다.
2) 특징
프리미어리그에서는 20개 클럽이 경쟁을 치룬다. 한 시즌(8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동안, 각 팀은 다른 한 팀과 두 번 경기를 치르는데, 한 번은 홈구장에서 한 번은 상대 팀 구장에서 경기를 갖는다. 각 클럽은 시즌당 도합 총 38경기를 치른다. 경기에서 이기면 승점 3점이 주어지고, 비기면 승점 1점이 주어진다. 졌을 때는 승점이 주어지지 않는다. 팀 순위는 승점 순으로 매겨지는데, 승점이 같으면 골 득실 차, 골 다 득점 순으로 순위를 매긴다.
각 시즌 종료 시, 승점이 가장 많은 팀이 챔피언의 자리를 차지 할 수 있게 된다. 승점이
같을 경우 골 득실 차, 골 다득점을 기준으로 챔피언을 가린다. 만약
그래도 챔피언을 가릴 수 없는 경우에는 제3의 중립적인 장소에서 플레이오프 매치를 갖는다. 최하위 3개 팀은 풋볼 리그 챔피언십 리그로 떨어진다. 풋볼 리그 챔피언십의 상위 2개
팀과, 풋볼 리그 챔피언십의 3위에서 6위까지 겨룬 플레이오프의 승자 한 팀이 다음 해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오게 된다.
프리미어리그는 UEFA에서 주관하는 유럽 대회 진출 자격이 매년 주어지는데, UEFA에서 주관하는 유럽 클럽 대항전에는 프리미어리그의 총 7개의
팀이 참가한다. 그중 UEFA 챔피언스리그에는 프리미어리그 최상위의 4팀이, UEFA 유로파리그에는 중상위의 3팀이 참가하게 된다.
프리미어리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축구 리그이며,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이 시청을 하는 스포츠 리그지만, 그에
따른 비판들도 따라온다. 주된 비판 가운데 하나는 프리미어리그와 풋볼 리그 간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있고, 이른바 빅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리버풀 FC, 첼시 FC, 아스널 FC)라 불리는 빅 클럽들의 과점 현상이다. 빅4라고 불리는 이 클럽들은 지난 28번의 시즌동안 무려 22번의 우승을 차지하였다.
3) 세계적 리그가 된 이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가 세계적 리그가 된 이유 중 첫 번째는 바로 시장을 활짝 열었다는 것이다. 축구 종가를 자부하는 잉글랜드이다 보니 축구판이 폐쇄적이었다. 그 결과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이 모여 경기를 펼치게 되었고, 경기 내용은 점점 지루하고 단순한 경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단조로운 경기 방식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선수와 감독이 필요했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는 선수, 감독 심지어 구단주까지 국적 불문, 경쟁력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것으로 게임의 법칙을 바꿨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선수와 감독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게 되면서, 프리미어리그가 성공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프리미어리그의 외국인 선수 비중은 1992년 20.8%에 불과했지만, 현재 60.2%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이적시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두 번째는 바로 치열한 경쟁 원리를 도입한 것이다. 매 시즌마다 하위 3개 팀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바로 아래 리그인 챔피언십으로 강등된다. 물론 챔피언십에서 성적이 좋은 팀은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할 수 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될 경우, 중계권료, 스폰서십 등에서 엄청난 손해를 보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죽기 살기로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승격 강등 시스템 때문에 프리미어리그의 경기들은 늘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게 되었고, 인기가 많아졌다. 세 번째는 바로 마케팅이다. 각 구단에서는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도 팬들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기장을 지자체나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데 비해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대부분의 구단이 자체 경기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기장을 활용해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벌일 수 있다.
수시로 경기장을 팬들에게 개방하고, 축구 박물관, 축구 카페, 상점 등을 결합해서 경기장을 팀의 테마파크처럼 활용하는 게 좋은 예시이다. 또 원정응원을 오는 서포터즈들을 위해서 구단 버스와 여행자 보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단순히 고객을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고객을 찾아가는 마케팅이고, 이것이 프리미어리그가 세계적인 리그가 된 원동력이다.
축구 소개
1) 유래
물건을 발로 차거나 손으로 던지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모든 스포츠가 이 본능에서 출발했고, 시대와 사람이 바뀌면서 다양 해져왔다. 그러므로 어느 한 지역이나 인종에 의해 축구가 시작됐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고대로부터 신라, 중국, 일본, 이탈리아, 그리스, 이집트, 아시리아, 프랑스, 영국 등 세계 도처에 축구의 원형에 관한 얘기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기원전 7~6세기경 그리스에서는 '하르파스톤(Harpaston)'이라는 경기가 성행했고, 이것이 로마에 전파돼 무사들이나 군대 스포츠로 발전하면서 '하르파스툼(Harpastum)' 또는 '파가니카(Paganica)'라는 새로운 경기로 변형됐다. 하르파스툼은 로마 제국 내에 급속히 확산됐다. 이 경기는 각기 자기진영의 골라인을 지키는 두 팀 사이에 벌어졌다. 경기장에는 중앙 원도 있었다.
이 놀이는 공을 차거나 던지면서 전진해 마지막에는 상대가 지키고 있는 골라인을 넘는 것이었다. 로마가 영국을 침략했을 때 하르파스툼이 영국에 소개됐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도
둥근 물체를 발로 차거나 튀기거나 동료에게 패스하는 등의 놀이가 있었다. 약 3000년 전, 중국의 한조(uOðE)시대에는
축구의 일종인 '츄 슈'라는 경기가 있었는데, 목표 지점을 향해 공을 차고 나가는 놀이였다고 전한다. 일본 사람들은 '게마리'라는 경기를 했다고 한다.
여덟 명이 한 편이 되어 네 모서리에 각각 나무기둥을 세워 놓은 구역 안에서 우군끼리 공을 패스하는 놀이였다.
이러한 단순한 놀이들이 세계 도처에서 각각 독특하게 발생하고 성장했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축구와 흡사한 놀이들이 있었다고 하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축구의 원류는 영국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2) 역사
축구가 현재와 같은 스포츠로서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은 1800년대부터이다. 1800년대 영국에서의 풋볼은 무질서한 가운데 행해졌기 때문에 각 그룹들은 통일된 경기규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863년 10월 26일 풋볼 그룹의 대표자들은 런던에 모여 제1차 회의를 가졌으나 회의는 부진하였고 그러다가 같은 해 12월 8일 개최된 제6차 회의에서 협회가 규칙을 통일하고 공인된 규약과 경기규칙을 인쇄하여 발행할 것을 결의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협회가 인정하는 경기 규칙에 의한 축구가 생겨났으며, FA(Football Association)의 탄생이다. 1886년 잉글랜드의 맨체스터에서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의 축협이 참여한 가운데 IFAB(국제축구평의회)가 탄생하여 국제 축구 규칙을 만들었고 1888년 역시 잉글랜드에서 최초의 축구 리그인 풋볼 리그가 탄생하였다. 영국인들이 즐겨 하던 축구는 급속도로 전세계에 보급되기 시작한다. 영국의 상인, 군인, 선교사, 유학생들은 자신이 가는 나라마다 축구를 보급하였다. 이후 1904년 프랑스에서 FIFA가 설립되면서 축구는 국제적인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고 1930년 제1회 FIFA 월드컵이 열리게 된다.
1900년대 초반 축구선수 평균 월급은 5파운드 수준이었다. 하지만
1913년 구디슨 파크에 조지 5세가
축구 경기 관람을 위해 처음으로 영국 왕족이 축구를 공식적으로 보러 방문하면서 시각이 달라진다. 1920년대에는
선수 평균 월급이 100파운드 이상으로 확 뛰어오르기 시작했고 그 즈음,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도 차례로 프로 축구리그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축구와 리그 붐은 서서히 더 퍼져갔고 월드컵의 탄생 및 여러 우여곡절로 축구 인기는 세계적으로 더 자리를 잡게 된다.
3) 규칙
규칙의 제정은 축구의 규칙은 국제축구평의회(IFAB)에서 결정한다. 국제축구평의회는 잉글랜드 축구 협회,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 웨일스 축구 협회, 북아일랜드 축구 협회에서 각 1명씩, FIFA의 4명을 합해 총 8인으로 구성되며, 8명 중 6명이 안건에 찬성하면 통과된다. 경기방식은 경기를 치르는 양쪽 팀은 필드에 각각 11명을 출전시킨다.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스로인 상황을 제외하면 손을 사용할 수 없고, 골키퍼만이 자기편 페널티 박스 안에서 제한적으로 손을 쓸 수 있다. 경기 시간은 정규 시간은 90분이며 전, 후반으로 나눠 각각 45분으로 진행되면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전, 후반의 45분이 각각 끝나면 추가시간이 주어진다.
득점은 팔과 손을 제외한 신체 부위로 공을 차서 골대 안으로 공을 넣으면 득점으로 1점을 부여한다. 다시 말하면 스로인 상황에서 손으로 던진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가도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스로인한 공이 다른 선수에 맞고 들어가면 득점으로, 스로인은 도움으로 인정된다. 선수교체는 모든 공식 대회에서 선수교체는 3명까지 할 수 있다. 반칙은 밀거나 잡거나 손과 팔을 쓰거나, 공이 아닌 상대 다리를 노리거나 발바닥을 들고 들어가는 거친 태클, 일부러 공으로 상대 선수를 맞추는 행위 등은 파울이 주어지며 경우에 따라 경고가 주어지기도 한다.
반칙을 했을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직접 프리킥을 부여하며, 인 플레이 중에 볼의 위치와 상관없이 선수가 자신의 페널티 에어리어 내에서 만일 위의 반칙을 범했다면 페널티 킥을 부여하고, 페널티 에어리어 내에 있는 골키퍼가 반칙을 했을 때는 간접 프리킥을 부여한다. 비교적 간단하고 알기 쉽다는 축구 규칙 중 가장 난해한 것 중에는 오프사이드라는 규칙도 있다. 룰 자체는 짤막하게 명문화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팀 동료가 상대편 최후방 수비수보다 앞서 있는 상황에서 공을 받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나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는 것만으로는 반칙이 아니다. 최근에는 FIFA에서 축구 경기에 공정성을 더하기 위해 도입한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2016년 클럽 월드컵에서 공식적으로 도입되었다. 정식
명칭은 Video Assistant Referees-VAR(비디오 보조 심판)이다. 비디오 부심은 모든 경기 화면을 지켜보면서 주심이 명확히 잘못된
판정을 내렸을 때 이를 주심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모든 판정을 전부 판독하는 것이 아닌 명백한
오심에 한정하여 판독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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