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의 기원
신비주의적 전통을 지닌 연금술은 아랍으로 건너오면서 역시 신비주의적인 수피즘(sufism)과 결합되면서 발전하게 된다. 연금술(alchemy)이라는 어휘 자체가 아랍어의 기원을 갖고 있으며, 그 외 알칼리, 알코올, 나프타, 나트륨 등 연금술을 통해서 발견된 수많은 화학적 물질들의 이름들이 아랍어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
한편 연금술의 이론적 근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모든 물질은 4원소들의 배합이기 때문에 그 비율을 바꾸면 다른 물질을 된다는 생각은 연금술들에게 물질이 변환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9세기에 와서 아랍 연금술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자비르 이븐 하이얀(Jabir ibn Hayyan, 721?∼815?)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새로운 황-수은설을 제창했다. 그는 무려 2,000여권의 저작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14세기 스페인의 연금술사들은 그의 이름에서 Jabir를 라틴명으로 Geber라고 불렀다.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 정립한 황-수은설은 이슬람과 유럽 연금술의 기본 원리로 발전으며, 18세기 화학혁명 직전에 풍미했던 플로기스톤 이론에 이르기까지 오랜 동안 화학의 주요 이론으로 자리를 잡았다.
연금술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이론이나 황-수은설을 이용하는 한편, 물리, 화학적 조작을 가하기도 했으며, 기도 혹은 주술도 활용하는 등 헬레니즘 시대 이래로 강하게 풍미했던 신비적 자연관이 깔려 있었다. 또한 연금술사들은 점성술사들처럼 대우주와 소우주가 서로 연결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물질들을 ---금(태양), 은(달), 철(화성), 납(토성), 주석(목성), 구리(금성), 수은(수성) --- 각각의 별자리와 연관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신비주의적이고 비합리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금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학사상 많은 기여가 나왔다. 즉 연금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화학적 방법, 시약이 사용되었으며, 천평과 화학적 조작이 활용되면서, 새로운 화학 물질도 많이 발견됐다. 연금술이 과학사에서 한 역할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평가에서 가장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연금술은 아마도 아들에게 자신의 포도원 어딘가에 금을 묻어두었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은 땅을 파서 금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포도 뿌리를 덮고 있던 흙무더기를 헤쳐놓아 풍성한 포도 수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유용한 발명과 유익한 실험들을 가져다주었다."
자비르 이븐 하이얀
중세 이슬람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연금술사, 721년 페르시아(현재 이란)의 투스(Tus)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라비아 반도로 건너가 대학자 하르비 알힘야리 밑에서 수학한 후 이라크 쿠파로 이주했다. 그리고 ‘천일야화’의 칼리프 하룬 알라시드의 총애를 받으며 바그다그에서 궁정연금술사로 일했다.
자비르는 과학 방법론과 통제된 실험에 기초한 새로운 연구 방식을 연금술에 도입한 공로가 있다. 연금술(화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실제의 연구와 실험에 있다고 보았으며, 이것 없이는 연금술이 추구하는 목표를 최소한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자비르는 아일랜드의 로버트 보일이나 프랑스의 앙투안 라부아지에와 더불어 ‘화학의 아버지’로 간주되기도 한다. 과학사가인 폴 크라우스의 글은 자비르의 연금술과 그리스 로마 시대의 연금술 간 차이를 확연히 판단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스 문헌을 잠깐만 들여다보면 극히 적은 부분만이 실험실에서 실제 실험한 결과에 따라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에게 전해진 ‘과학’ 기록들도 어떤 해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의미가 통하지 않는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자비르의 연금술은 다르다. 실험 과정과 연금술 장치들을 비교한 명확한 설명, 방법론에 따른 물질 분류는 그리스 문헌이 지닌 괴기하고 비밀스러운 전통과 거리가 매우 멀다.
자비르의 실험을 지탱한 이론은 명료함과 인상 깊은 통일성이다. 자비르를 포함한 초기 무슬림 학자들은 중요한 화학 물질과 현상을 많이 발견하였다. 염산, 질산, 황산을 최초로 발견하고 질산과 염산의 혼합물인 왕수가 귀금속인 황금이나 백금을 녹이는 사실도 발견했다.
자비르 연구에서 궁극의 목표는 타그윈(Takwin), 즉 실험실에서 인간을 포함한 인공 생명체를 창조해 내는 것이었다. 인공 생명을 만들겠다는 자비르의 아주 오래 전 꿈은 현대에 와서 게놈 연구와 유전자 해독, 인공수정과 복제기술과 같은 매우 세련된 도구들의 발달로 좀 더 현실성을 갖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 아랍 중세 초기의 과학적 사상가들이 엄청난 치욕, 종교적 비판과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인공생명에 대한 탐구를 했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이들의 위대한 발견들은 그 후 1000년 동안 화학자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펴 수많은 연구의 견인차가 되었다.
업적을 보자면,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 정립한 유황-수은설로 이루어진 금속에 관한 개념은 이슬람과 유럽의 후대 화학자와 연금술사들에게 기본 원리로 받아들여졌으며, 18세기 화학혁명 직전까지 풍미했던 플로지스톤설의 원조로 자리를 잡는다. 그는 연금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험을 중시했는 데 시약과 천칭을 사용하고, 20가지가 넘는 종류의 증류기, 여과장치, 승화장치, 열중탕, 건류용 가마 같은 기본적인 화학실험 장비들을 사용하여 화학반응을 정량적으로 연구하고, 정밀하게 측정하여 기록하여 정리했다. 또한 이러한 장비들을 활용하여 증발, 여과, 승화, 여러 형태의 연금술적 증류, 용융, 결정화 등의 실험기법을 써서 비소와 주석, 염화수은, 황산, 질산, 염산, 질산은, 질산암모늄 등의 제조법을 발견했다.
자비르는 또한 금속의 정제, 철 제조법, 옷과 가죽의 염색, 금이나 백금을 녹일 수 있는 왕수의 제조, 옷의 방수나 철의 부식을 막기 위한 코팅제, 이산화망간을 사용한 유리 제조법, 식초를 증류한 아세트산 제조법, 포도주 양조 과정의 잔여물로부터 주석산의 제조, 황철광을 써서 금색 글씨를 쓰는 등 여러 가지로 응용했다. 화학 역사가인 홈야드는 자비르의 업적은 연금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실험과학으로 발전시킨 데 있다고 보며, 화학사에서 자비르의 중요성은 보일이나 라부아지에와 버금갈 정도라고 말한다.
연금술의 철학
연금술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중세기 유럽에서 성행한 원시적 화학기술로, 철이나 구리 등 싼 금속을 이용하여 금으로 변하게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연금술의 많은 실험을 통해 여러 물질들을 발견하게 되고, 실험자체도 발전하면서 과학이 발달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금술이 담고 있는 비과학적인 철학속에서도 과학의 발전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금술사들은 실험자의 행위가 실험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연금술사들은 연금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연금술사들은 건강하고, 겸허하며, 경건하고 순결하고 덕이 있으며, 신뢰성도 지니고, 희망에 차 있고, 자비로우며, 선하고, 인내심이 있어, 삼갈 줄도 알고 이해심도 깊으면서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트루스 보누스는 사람들에게 연금술 집단에 들어오기 전에 자신들의 마음과 정신을 먼저 들여다볼 것을 충고한다. 연금술에 있어서 연금술사는 실험의 한 요소다. 그래서 연금술사는 실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금을 얻는 과정들은 연금술사의 순결의 정도와 같이 한다. 연금술사의 마음이 순결하지 못하면, 가장 순결한 금속인 금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금을 얻으려는 연금술사에게는 자기 수행이 먼저 요구되었다.
실험을 위해 먼저 실험자의 자기 수행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연금술이 너무 비과학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래에 있는 두 가지 일화들이 그런 비과학적 연금술의 모습이 과학 발전의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첫 번째로 비바라 메클린톡의 일화이다.
바바라 메클린톡은 1983년 여성 단독으로는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생물학자다. 이런 메클린톡에게 잊지 못할 경험 하나가 있다. 1940년대 중반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스탠퍼드 연구소는 ‘뉴로스포라’라는 곰팡이와 씨름 중이었다. 수개월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그 곰팡이의 생식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결국 연구소는 메클린톡에게 도움을 청했다. 메클린톡은 실험실에서 꼬박 사흘을 지냈지만, 조금의 성과도 낼 수 없었다. 메클린톡은 완전히 낙담했다. 메클린톡은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클린톡은 그 문제를 해결해 볼 요량으로 산책을 나섰다. 유칼리나무가 쭈욱 늘어서 있는 길가 벤치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던 메클린톡은 ‘유레카!’를 외치며 벌떡 일어나 실험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마주한 현미경속에는 마치 곰팡이들이 태도를 바꿔 메클린톡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기로 마음먹은 듯, 곰팡이들의 생식과정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후 메클린톡은 일사천리로 연구를 진행했고, 일주일만에 그 곰팡이들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었다. 메클린톡은 무엇보다도 ‘유칼리 나무 아래서 벌어졌던 그 일’이 곧 문제의 해법을 얻는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믿고 있었다. 자기 내부의 큰 변화 때문에 한결 명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올바른 방향을 새로 설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메클린톡이 한 말이다.
“이런 일은 그래요. 죽을힘을 다해 매달려도 문제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 경우에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 풀어야 해요. 그러면 저절로 답이 보여요.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뭘까요. 우리가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문제인지, 왜 지금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지 알아내는 거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성찰해야 그때 나 자신에 대해서 어떤 질문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네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실험실을 벗어나 밖으로 좀 나가 보자는 거였어요. 한참을 걷다가 유칼리나무 아래로 갔지요. 그리고는 내가 무엇 때문에 문제를 풀지 못하는지 먼저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어요.”
메클린톡이 실험에서 보여준 놀라운 비법은 ‘자기 성찰’이다. 이야말로 실험자의 변화가 실험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연금술의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하이젠베르크의 일화이다.
우리는 일정한 지각의 구조 속에서 세계를 경험한다. 세계는 우리가 가진 사유구조를 통해 드러난 세계다. 아인슈타인은 이 말을 ‘이론이 관찰을 만든다.’고 표현했다. 우리가 기존의 사유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 그 사유구조에 맞는 세계 밖에는 만나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의 그 말은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으로 나아가는 중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된다. 양자적 현상을 어떻게 원자 궤도로 설명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원자 궤도는 하이젠베르크에게 너무나 자명한 하나의 ‘사실’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자기 연구를 그 사실 속에서 해명해야 했지만, 그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때, 하이젠베르크는 이론이 관찰을 만든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기존에 자신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생각, 즉 원자의 궤도를 버렸다. 그러자 그 때까지 원자 궤도의 모습으로 보이던 것이 다르게 보이면서, 문제의 해결 지점들이 보였다. 하이젠베르크는 그것을 “새로운 여명이 펼쳐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하이젠베르크가 기존에 가졌던 사유를 버린 지점이라고 여길 수 있다.
위의 일화들은 연금술사들이 말하던 실험자 자신의 수행을 보여준다. 메클린톡과 하이젠베르크는, 외부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봤다. 자연에 질문하기 전에 지금 내가 가진 사유구조가 어딘가에 고착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때문에 자연의 어떤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질문했다.
현대의 과학에 대해 연금술이 가지는 의미는 단지 기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연금술사들이 실험에 대해 가졌던 마인드가 과학의 강력한 힘으로 작동해 발전시켰다고 생각한다. 실험은 실험자 자신과 함께 간다는, 세계에 대한 실험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실험이라는 그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것을 연금술의 철학에서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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