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결합과 분자구조] 분자들의 인력과 물리적 성질









분자들의 인력과 물리적 성질



이제 분자들 사이의 인력이 여러 가지 물리적 성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자. 고체는 각 입자가 일정한 위치에 고정된 상태에서 진동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에서 각 입자를 결정의 일정한 위치에 붙잡고 있는 힘의 크기를 나타내는 격자에너지는 입자들 사이의 인력이 클수록 커진다. 고체 상태에서 입자들은 운동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자유롭게 운동하고 싶어 하지만 운동에너지보다 격자에너지가 더 크기 때문에 자기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온도가 점점 높아져 운동에너지가 격자에너지보다 커지면 드디어 다른 입자들을 벗어나 마음대로 운동할 수 있게 된다. 이 현상을 용융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입자들 사이의 인력이 클수록 격자에너지가 커지고 결과적으로 더 높은 온도에서 녹게 된다. 끓는점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된다. 액체 상태에서 분자들은 자유롭게 운동하지만 다른 분자들과의 접촉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러나 기체 상태에 있는 분자는, 충돌하기 전에는 다른 분자들과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이 자유롭게 운동한다. 따라서 액체 상태에 있던 분자가 기체 상태로 가기 위해서는 접촉하고 있던 다른 분자들과의 인력을 모두 극복해야 한다. 분자들 사이의 인력이 강할수록 그 인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큰 운동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 끓게 된다.

입자들 사이의 인력이 클수록 끓는점이나 녹는점은 높아지기 때문에 분자의 크기가 비슷하다면 수소결합을 할 수 있는 분자의 끓는점과 녹는점이 가장 높고 영구적인 쌍극자를 가지고 있는 극성분자가 그 다음으로 높으며 비극성분자가 가장 낮다. 그러나 비극성분자라고 할지라도 분자량이 커지면 런던 힘이 커지기 때문에 극성분자보다 높은 끓는점이나 녹는점을 가질 수도 있다. 비극성 분자인 CBr4 와 Cl4 가 수소결합을 할 수 있는 극성 분자인 물보다 높은 녹는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표면장력과 용해도와 같은 다른 성질들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위치에너지의 상관관계를 알아보자.

우리는 입자들 사이에 인력이 작용할 경우에는 위치에너지가 낮아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인력의 크기가 클수록 또 입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수가 많을수록 위치에너지가 낮아진다. 위치에너지가 낮아지는 것은 안정해지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표면장력을 설명해보자. 표면장력은 액체 방울이 가능하면 둥글게 되도록 만드는 힘이다. 그림 1를 보면 액체의 표면에 있는 분자는 내부에 있는 분자에 비해 다른 입자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인력의 수가 작다.

이는 곧 표면에 있는 분자의 위치에너지가 내부에 있는 분자에 비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액체 전체의 위치에너지를 낮추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구형으로 만들어 표면에 있는 분자의 수를 줄여야 한다. 표면장력은 이와 같이 표면에 있는 분자의 수를 줄여 위치에너지를 낮추려는 경향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분자들 사이의 인력이 강할수록 표면에 있는 분자와 내부에 있는 분자의 위치에너지 차이가 커지기 때문에 더 큰 표면장력을 갖게 된다.


그림 1 액체 상태에서 분자들 사이의 인력


용해도나 젖음(wetness)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분자나 이온 사이의 인력을 고려해야 한다. 용해도에 관한 기본적인 법칙은 극성 용질은 극성 용매에 녹고 비극성 용질은 비극성 용매에 녹는 것인데 이런 현상을 “Like dissolves like"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젖음 역시 물과 같은 극성 용액이 한지와 같은 극성 표면에 있을 때는 잘 젖지만 기름종이와 같은 비극성 표면에 있을 때는 잘 젖지 않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입자들 사이의 인력을 가지고 설명해보자.


그림 2 이온결합 화합물과 공유결합 화합물의 용해


용질이 용매에 녹는 것 또는 용해되는 것은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용질의 각 입자가 용매에 의해 완전히 둘러싸이는 것이다. 이것을 용매화(solvation)라고 하고 물이 용매인 경우에는 수화(hydration)라고 한다. NaCl을 예로 들어 이온결합 화합물이 물에 녹는 과정을 설명해보자(그림 2 a). NaCl의 기본 입자는 Na+ 이온과 Cl- 이온이며 고체 상태에서 이 두 이온은 서로 정전기적인 인력으로 붙잡혀 있다. 그러나 NaCl이 물에 녹으면서 각 Na+ 이온과 Cl- 이온은 결정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물 분자들에 의해 둘러싸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음이온을 둘러쌀 때는 물 분자 쌍극자의 (+) 끝이 안쪽을 향하게 되고 양이온을 둘러쌀 때는 쌍극자의 (-) 끝이 안쪽을 향한다. 메탄올과 같은 분자의 경우에는 기본입자가 분자이기 때문에 개별 분자가 물 분자에 둘러싸이면서 녹는다(그림 2 b).

이와 같이 용매화되는 과정에서 용매와 용질의 위치에너지의 변화가 일어난다. 용질이 용매에 녹기 위해서는 먼저 용질 입자들 사이의 인력을 깨뜨려야 하기 때문에 위치에너지가 높아졌다가 용매화된 후에 용매 분자들과의 인력을 통해 다시 위치에너지가 낮아진다. 이것은 용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만약 용매화된 후에 용질과 용매 분자들의 인력을 통해 위치에너지가 충분히 낮아지지 못하면 그 용질은 녹을 수 없게 된다. 위에 예로 든 NaCl이나 메탄올이 물에 녹는 경우에는 용매와 용질 사이에 강한 인력이 다시 형성되기 때문에 용매화된 후에 위치에너지가 충분히 낮아진다.


그러나 비극성 분자인 CCl4를 물에 녹이려고 하면 물이 CCl4 분자를 둘러싸야 하는데 물 분자들끼리 상호작용을 할 때는 강한 인력인 수소결합을 할 수 있었지만 CCl4와는 훨씬 약한 런던 힘만 작용하게 된다. 그 결과 CCl4 를 둘러싸고 있는 물 분자들은 위치에너지가 높아진다. 이 상황에서 전체의 위치에너지를 최대한 낮추는 방법은 물과 CCl4 의 상호접촉을 최소한이 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물과 CCl4는 섞이지 않고 자기들끼리 모이게 된다. 작은 자석 조각들과 콩을 섞어 놓으면 자석끼리 달라붙으면서 모여드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두 종류의 결합에 대해 살펴보았다. 앞에 2절에서 이온결합 화합물의 경우 고체 상태에서 결정의 기본 입자는 이온이기 때문에 모든 입자가 이온결합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했었다. 그러나 공유결합 화합물의 고체에서는 기본 입자가 분자이다. 분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은 쌍극자-쌍극자 인력이나 수소결합 또는 런던 힘으로 이온결합이나 공유결합에 비해 극히 작은 인력이다. 따라서 공유결합 화합물은 이온결합 화합물에 비해 훨씬 낮은 녹는점을 갖는다. 여기에서 분자는 공유결합 화합물을 가리키기 때문에 이온결합 화합물은 분자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분자 가운데는 H2나 O2처럼 원소도 있기 때문에 모든 분자가 화합물은 아니다. 화합물은 두 종류의 이상의 원소가 결합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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